매일신문사 탐방 - 

신문사 ‘백주 테러’를 아십니까?

 

 

유영식 조사연구편집장 (YTN)

 

 

회원사 탐방코너에 매일신문이 소개된 때가 2002년 조사연구 15호였다. 지방 신문사는 중앙지에 비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회원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리 내린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란 것이다. 전국적으로 첫눈이 곳곳에서 내리던 11월 중순, 필자는 경상권 지사를 순회하는 회사 출장 중에 대구의 회원사인 매일신문사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대구매일신문사’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있는데, 매일신문사는 1946년 3월 1일에 창간되었으며 1950년 10월 1일 천주교 대구교구 유지재단이 지금까지 대주주로 있다. 자유당 정권 때는 신문사 ‘백주 테러’를 당하였고, 주필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피소당해 대법원까지 갔으나 무죄가 확정된 역사가 있으며, 1964년 8월에는 정부가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 공포하고 이의 시행을 꾀하자,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과 함께 언론윤리위원회 소집에 반대의사를 표명할 만큼 국내 언론사(史)에 관심이 있다면 지방 언론사이면서도 전국지를 지향하고 옛날부터 강한 재야 기질의 논조를 지켜온 신문사로 유명하다.

 

<매일신문사 정보관리부 자료실 입구>

 

 

대구 계산동에 위치한 매일신문사 사옥에 도착하니, 바로 옆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결혼식을 한 곳으로 알려진 계산동성당이 고즈넉하게 맞붙어 있었다. 성당이 바로 보이는 커피숍에서 이재근 선배가 반가이 맞아 주셨다.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짧은 안부인사에부터 협회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눴다. 이윤희 선배와 오랜만에 어색한 인사를 한 뒤에 “뭘 보여줄게 없다”라고 한사코 손사래 치셨지만 조사기자의 열정이 그대로 담긴 정보관리부 내부 자료실로 안내해 주셨다.


 

<신문 스크랩 보존 서가>

 

<인화사진 보관함 속의 보도사진>

 

 

자료실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언론사 자료실답게 언론관련 문헌 도서자료와 오래된 신문사에 가면 한켠에 꽉 차있는 신문 스크랩 서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신문 스크랩은 보관만 하고 있으며, 약 5천 권 정도의 규모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반대쪽에는 예전에 촬영한 사진필름과 인화사진을 보관하는 보관함이 쭉~ 늘어서 있었다. 보관함 안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니 예전 동아일보 안산서고를 방문했을 때처럼 미지의 세계를 보는 듯 했다. 비록 대구,경북 지역의 뉴스였겠지만 역사적 사료가치가 높은 사진들이 종이봉투에 차곡차곡 들어차 있었다. 

이윤희 선배에게 대략적인 업무를 물어보니, “올해 4월 부터 예전 CD-ROM에 보관하던 약 7만 건의 사진파일을 사진DB로 이전 및 검수 작업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중앙신문사도 그러하듯 이제는 기사DB에 관리보다는 사진에 대한 관리로 많이 업무영역이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보관리부의 자료실을 보고난 후 매일신문이 자랑하는 신문전시관을 자연스럽게 방문했다. 지방에서 유일하게 신문박물관 형태의 신문전시관이며, 이곳에서 작년에만 만3천 명의 학생들이 직접 신문사 취재기자가 되어 신문제작까지 완성하는 ‘일일기자체험’ 교육을 성공적으로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신문박물관 형태의 신문전시관>

 

 

<신문박물관 형태의 신문전시관>

 

 

지하 1층에 신문전시관에는 오래된 유명 신문, 세계의 신문, 신문 광고, 매일신문 창간호, 납 활자, 활판인쇄방식, 주조기, 유명 기자의 유품, 과거 카메라, 호외, 특종 등 다양한 자료를 전시해 놓고 있다.
이곳에서 매일신문은 물론 대구 언론계의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만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입구에 전시된 막걸리 마시는 아이의 사진을 가리키며 “예전에 막걸리 선거의 증거”라며 이러한 사진들이 시대를 기록하고 비추는 언론의 역할 신문전시관 존재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기자 유품 전시>

 

 

매일신문에서 신문전시관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이재근 선배가 창간 60주년 제안공모전에 대상으로 공모가 당선되었기 때문이었고, 이후로 직접 전시관의 모델링과 설계, 공사 전반을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고, 지금은 신문전시관의 운영 및 ‘기자체험’ 교육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신문전시관을 둘러보고 긴 시간은 아니였지만, 지역회원사의 조사기사의 일터를 소개할 수 있다는 기쁨이 생겨났다.

이재근 선배는 끝으로 “조사기자협회가 20년이 넘게 선·후배간의 유대와 친목을 이어지게 했고, 협회의 선배로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행사에 참석한다”고 했다. 우리 협회가 일궈놓은 좋은 선·후배간의 끈끈한 인연을 오랫동안 유지시켜 싶다는 선배의 말을 간직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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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사기자협회

사단법인 한국조사기자협회는 1987년 국내의 신문, 방송, 통신사의 조사, 정보, 자료, DB업무를 담당하는 조사기자들의 모임으로 출범하여, 2009년 회원들의 연구활동에 기초한 신문 및 방송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사단법인으로 재출범하였으며, 언론공익활동으로 신문논술대회, 조사연구 발간, 세미나·토론회, 보도연감 출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는 언론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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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유산, 아카이브관리부가 함께 합니다" 

 

김성아 KBS 아카이브관리부

 

 

세계기록유산,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유네스코는 지난 10월 9일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기록물 2만522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당대 사람들에게 유의미했고 후세에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기록물을 전세계가 함께 보호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록유산 보호제도로, 한국의 13번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기록물 / 출처:KBS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은 KBS가 1983년 6월 30일 밤 10시 15분부터 11월 14일 새벽 4시까지 방송기간 138일, 방송시간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한 비디오 녹화원본 테이프 463개와 담당 프로듀서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2만522건의 기록물을 총칭합니다. 이산가족찾기 방송은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냉전 상황과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한편 남북 이산가족 최초상봉의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텔레비전을 활용한 세계 최대 규모의 캠페인성 프로그램으로, 세계 방송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유산으로도 평가될 수 있습니다. 총 100,952건의 이산가족이 신청하고 53,536건이 방송에 소개되어 10,189건의 이산가족이 상봉하였고, 방송 전담인력 1,641명이 투입되고 138일간 방송된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KBS 본관앞에 모인 이산가족들 / 출처: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 출처: KBS>

 

KBS는 지난 2011년 이산가족찾기 방송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였으나, 자료 부족 및 등재신청서 미흡의 사유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심사에서 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아카이브관리부의 주도 아래 전사적 TF를 구성하고 당시 제작진 및 관련 기관과의 면담 조사를 통한 기록물 수집 확대, 체계적인 기록물 정리 작업, 웹사이트·동영상·리플렛·도록을 제작하는 등 대내외 홍보를 지속하면서 2013년 문화재청 주관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이 되었고 2015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확정될 수 있었습니다.

 


KBS 콘텐츠의 과거, 현재, 미래

 

1983년에 방송되었던 이산가족찾기 방송 기록물이 30년이 지난 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가능했던 것은 KBS 아카이브관리부의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콘텐츠 관리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부서는 KBS 방송제작과 관련하여 발생한 콘텐츠를 수집·관리하고, 제작 및 다양한 부가 서비스에 이용하게 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1957년 사운드 라이브러리 업무와 1961년 필름 라이브러리 업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KBS 아카이브를 이어나가며 KBS 방송콘텐츠의 수집, 관리, 운영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아카이브에서 관리하는 콘텐츠는 비디오콘텐츠, 오디오콘텐츠, 문헌콘텐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필름, 사진, 비디오, 디지털파일 등 비디오 콘텐츠를 다루는 비디오아카이브, 음악, 음향, 녹음물, 디지털파일 등 오디오 콘텐츠를 다루는 오디오아카이브, 그리고 도서, 연속간행물, 방송대본 등을 다루는 도서관, 사진 콘텐츠를 다루는 사진아카이브로 KBS 아카이브는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디오아카이브

비디오아카이브는 제작진이 취재한 촬영원본 및 프로그램 원본을 수집, 분석·가공, 디지털 매체변환 등 재가공 처리과정을 거쳐 방송제작에 필요한 양질의 영상콘텐츠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며 영상콘텐츠의 가치를 극대화시켜 한국 영상문화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곳입니다.
방송환경의 디지털 전환에 발맞춰 보존 중인 영상테이프를 동영상 파일로 변환함으로써 콘텐츠의 효율적인 관리는 물론 파일기반 제작 및 네트워크 기반의 다각적인 서비스에 즉각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비디오아카이브 시스템 구축을 2010년부터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를 목적으로 전사적인 메타데이터 표준 체계를 수립하고 각 시스템 간 일관된 메타데이터의 생산, 활용, 공유를 유도한 ‘KBS 방송메타데이터 표준화’(기술연구소 공동)와 ‘KBS 콘텐츠 분류체계 표준화’ 작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영상테이프 자료실 / 출처: KBS>

 

 

 

<영상테이프 자료실 / 출처: KBS>

 

 

 

오디오아카이브

 오디오아카이브는 한국의 대중음악, 외국의 팝음악 그리고 클래식 음악, 라디오 방송프로그램 등을 수집하고 주제 분류, 메타데이터를 작성하여 방송제작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합니다. 오디오아카이브는 2005년부터 디지털작업에 착수하여 2010년에 KBS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CD와 DAT의 디지털화 전환을 완료하였습니다.


 

<KBS 음악자료실 음반 자료 / 출처: KBS>
 

 

 사진아카이브

 사진아카이브는 KBS의 사진자료를 수집, 보관하여 방송에 활용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방송사료, 희귀역사, 인물사진, 촬영, 전송, 외신 등이 인화사진, 슬라이드 필름, 디지털 파일 형태로 보존 저장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이나 뉴스 등에 활용되거나 국내외 홍보물 또는 프로그램 수출용 홍보물 제작에 활용됩니다.


 

<출처: KBS>

 

 

 

도서관

 도서관은 모든 직원들을 위한 지식정보 및 독서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단행본, 전자책, CD타이틀 등을 수집하여 등록,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서관은 KBS의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촬영 장소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KBS>

 


KBS 아카이브는 KBS 콘텐츠의 과거와 현재를 담아내고 또 미래를 담을 곳입니다. 또한 아카이브관리부는 방송 문화 유산이 후대에 잘 전승될 수 있도록 보존에 힘쓰는 한편 다양한 플랫폼에 맞춘 다각적인 콘텐츠의 이용 서비스도 지속할 것입니다.

 

KBS의 방송유산, 아카이브관리부가 함께 하며 지켜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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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사기자협회

사단법인 한국조사기자협회는 1987년 국내의 신문, 방송, 통신사의 조사, 정보, 자료, DB업무를 담당하는 조사기자들의 모임으로 출범하여, 2009년 회원들의 연구활동에 기초한 신문 및 방송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사단법인으로 재출범하였으며, 언론공익활동으로 신문논술대회, 조사연구 발간, 세미나·토론회, 보도연감 출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는 언론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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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사 탐방 – 동아일보 書庫

“국내 최대의 신문사 보물 창고”

 

유영식 조사연구편집장(YTN)

 

 

요즘 언론사는 자료보관 공간 축소가 하나의 흐름이 된 듯, 제대로 된 인쇄자료 보관이나 자사의 중요 자료보관을 위한 자료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쌓이는 자료를 폐기하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많은 공간을 할애해 적절한 수준으로 보관하는 것 또한 단순 산술적인 계산의 득실을 따져 그러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기도 안산시 동아일보 사옥에 위치한 서고는 이러한 안타까운 국내 언론사 현실에서도 인쇄보존자료 관리의 모범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고에는 귀중한 보존 자료가 많아 외부인들은 물론 동아일보에서도 조차 허락 없이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가을이 물씬 접어드는 10월 초 안산 서고를 담당하고 있는 백학림 회원의 안내로 미지(?)의 ‘보물창고’를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안산 서고는 동아일보 창간호를 비롯해 어린이동아, 신동아, 여성동아, 과학동아, 주간동아, 스포츠동아, 멋 등 주·월간 잡지류, 본사 출판 단행본, 과거 동아방송 방송자료 등 동아일보의 사초가 되는 귀중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동아일보 안산 사옥 2~3층에 자리 잡은 서고의 전체 규모는 약 220여 평. 서고는 전체를 집적서고 형태인 새로운 모빌랙으로 꾸몄다. 모빌랙 서고는 적은 공간으로도 많은 자료를 보관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모빌랙 방식으로 자료의 수용능력이 2배 이상 늘어나 반영구 보존서고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었고, 체계적인 자료관리가 가능하다. 서고에는 방화 설비와 적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항온항습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동아일보 안산서고 모빌랙 서가>

 

2004년 안산 사옥 3층에 새 보존 서고를 마련할 당시에 1곳이었던 서고는 현재 보존 자료 및 타 부서 이관 자료량의 증가로 4곳으로 늘어났는데, 제1 서고에는 본사의 영구 보존용 자료가 소장돼 있으며, 제2~제4 서고에는 본사에서 이관된 자료 및 기타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아래 표 참조.)

 

 

2개 층의 서고를 둘러보면서 2004년 안산 사옥 이전에 대한 에피소드에 대해 넌지시 물었더니 백학림 회원은 “여의도에서 안산까지 실어 나른 자료의 분량은 5톤 트럭 15대 분량이었는데, 귀중한 자료가 많았던 만큼 팀원들 모두 안산서고로 몇 달씩 출․퇴근하며 자료 분실과 손상이 없도록 많은 노력하였다.”라고 지난 기억을 들려주었다. 대부분의 조사기자가 한번은 겪어보았을 자료이전에 대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한 실수를 시작부터 하고 말았다.

 

서고를 둘러보면서 역사가 깊은 신문사답게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시대순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며 박물관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펼쳐든 수 십 년이 넘어 누렇게 변해 웅켜지면 바스러질 듯한 낡은 신문지 속에는 현대사가 여기저기 인쇄된 활자로 촘촘히 박혀 있었다. ‘언론은 역사를 기록한다’라는 명징한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중요자료는 보존 보관이 중요하기에 2008년에 국가기록원에서는 창간호 지면과 일장기 말소 사건 지면에 대해 국가영구기록물로 보존하기로 했으며, 안산서고에는 그 지면을 보존처리해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백학림 회원의 숨은 공로를 회사에서 인정받아 그해 공로상까지 수상하였다고 한다.

 


<동아일보 창간호>

 

서고를 둘러보며 필자에게 눈여겨 들어온 자료가 몇 가지 있었는데 소개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인명록 카드’였다. 요즘은 데이터베이스로 인물정보를 보관하고, 인터넷을 통해 쉽게 인물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자필로 작성한 인명 카드를 조사부에서 목록함에 보관하여 그것을 찾아 사용했었다. 그 인명 카드가 중요한 사실(fact) 자료로 사용된 일례가 있다. 2002년 노무현정부 시절 장상 국무총리 서리의 학력 기재 논란이 한창일 당시 동아일보 인명 카드에 기록된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라는 자필로 작성한 내용이 인사청문회 위증을 증명하는 결정적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왜 조사부와 자료가 필요한가에 대한 훌륭한 답이 아니였을까.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의 자필 인명카드. 박사학위에 보면 ‘美 Princeton大 Ph.D’고 적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동아일보가 자랑하는 동아방송(DBS) 방송프로그램 릴테이프 자료들. ‘유쾌한 응접실’ ‘DBS 리포트’ ‘풍물삼천리’ ‘정계야화’ ‘DBS 초대석’ 등 1960∼70년대 사회상을 보여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고스란히 빛을 보기위해 준비중이었다. 전체 12개 모빌랙을 가득 채운 13,300여 개에 달하는 자료는 1963년 4월부터 1980년 11월까지 18년 동안 방송된 것들이다. 이것에 대한 디지털화를 위해 목록조사 작업을 최근 마무리 하였고, 앞으로 동아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디지털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 중 ‘유쾌한 응접실’은 국내 TV 토크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단골손님, 얘기손님, 노래손님이 출연해 주어진 화제를 놓고 유머와 풍자를 섞는 당시 대담(토크)프로의 새로운 포맷이었고, ‘정계야화’를 비롯 ‘한국전쟁’ ‘특별수사본부’ 등은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프로그램으로 정치 드라마의 원조 격이라고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고바우영감’ 삽화 원본이었다. 신문에 실린 연재만화는 신문지에 인쇄된 것만 보았지, 실제 삽화원본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김성환 화백의 손길 하나하나가 묻어있는 삽화 원본 도화지를 보며 ‘아~’라는 감탄사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대한 별도의 디지털화 작업이 무의미하겠지만, 삽화 원본에 대한 진귀함과 이렇게 소중한 것들이 먼지에 쌓인 파일함에 갇혀있다니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바우 삽화 원본을 필자와 함께 둘러보는 백학림 회원>

 

방송사에 근무한 필자는 마이크로필름 작업이 아주 생소하고 처음 보는 일이었다. 동아일보는 발행 신문에 대한 마이크로필름 작업을 외주작업이 아닌 직접 수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최종판 기준으로 한 달 주기로 한 번 씩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백학림 회원은 직접 마이크로필름 촬영 과정을 보여주며 “아주 단순한 작업이지만, 신경을 많이 쓰이는 작업이다. 한 장이라도 잘못 촬영하면 다시 재촬영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타 신문사의 경우 외주업체가 엉망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조사부에서는 그것에 대한 검수작업 또한 현실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날로그적 장인의 모습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디지털화된 PDF나 데이터베이스 데이터로 충분하다고 하는 현실에서 이 수작업 하나하나가 미래에는 한때 대세였던 디지털을 뛰어넘는 아날로그가 되지는 않을까? 이러한 아날로그 마이크로필름 작업이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 이러한 작업이 지속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협회에서 중점적으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처럼 수많은 공간 여기저기에 전시물이 위용을 자랑하는 박물관 투어는 아니지만, 동아일보 안산서고를 방문한 것은 일종의 숨겨진 보물창고를 다녀온 것과 같았다. 창고에 쌓인 보물은 눈으로만 봤을 뿐이였다. 보물이 묻혀있다는 헛된 부러움만 생겼을 뿐이였다. 언젠간 창고속 보물이 세상의 보물로 바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 가져 온 것은 그 보물창고를 지키는 선배 조사기자에게 받은 후배로서의 부끄러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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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사기자협회

사단법인 한국조사기자협회는 1987년 국내의 신문, 방송, 통신사의 조사, 정보, 자료, DB업무를 담당하는 조사기자들의 모임으로 출범하여, 2009년 회원들의 연구활동에 기초한 신문 및 방송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사단법인으로 재출범하였으며, 언론공익활동으로 신문논술대회, 조사연구 발간, 세미나·토론회, 보도연감 출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는 언론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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