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는(제로) 대한민국’을 위하여

 

 

▲ 이대현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으로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 기업에까지 정규직 바람이 불고 있다. 문 대통령이 현장1호로 찾아간 인천공항이 ‘올 정규직화’를 천명했고, 지자체들도 앞다퉈 정규직화 계획을 내놓고 있다.

 

 

< 출처 : SR타임스 >

 

정규직화 바람은 민간 기업에도 불어 닥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6월에 하청대리점 직원 5,2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롯데는 ‘비정규직 1만명 3년 안에 모두 정규직 전환’ 계획을 앞당기겠다고 했다. 은행 등 금융권도 연내 비정규직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가지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공공기관, 지자체, 대기업, 금융권 할 것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왜 지금까지 하지 않거나, 딴청을 부렸나 싶을 정도다. 그 사이 경제상황이 특별히 나아지거나 수익이 늘어나지도 않았는데. 결국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과제 1호로 강력히 추진 의지를 밝히자 할 수 없이, 아니면 소위 ‘찍히기 싫어서’이거나 아부하려고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실제로 이같은 분위기는 25일 김영배 경총 부회장이 포럼 인사말에서 “회사의 특성이나 근로자의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치 않고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인식은 현실에 맞지 않다” 면서 정규직 과보호 문제가 비정규직 노동조건 개선 문제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기업들의 속내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애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즉각 일자리 문제를 정부ㆍ노동계와 함께 책임져야 할 경총의 성찰과 반성을 촉구하고, 국정기획위원회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경영계를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극히 기업 입장에서 나온 아주 편협한 발상”이라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민간부문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가기까지는 그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아닐 것이란 얘기다.

정권 초기니까 밀어붙이기가 가능 하겠지만 뒤따를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지속성을 갖기도 쉽지 않다. 물론 새 정부는 기업들이 지금까지 비정규직 보호법을 비켜가는 꼼수로 고용시장을 왜곡하고 자신들 배불리기에만 매달린 만큼, 이제부터라도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적극 따라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세우고 있다.

 

 

< 출처 : SR타임스 >

 

기업들도 비정규직 감소라는 정부의 고용정책 방향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비정규직 제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생각과 비정규직 전환이 마치 고용불평등 해결의 ‘만능열쇠’처럼 여겨지는 정서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기업들은 “비정규직 전환에 앞서 비정규직의 기준, 전화가능 직업군, 노동계의 양보, 구체적 정책 등 선결과제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무조건 나쁜 일자리로 몰아붙이며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반기업 정서’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30일 정부와 노동계‧기업이 발표한 비정규직 통계만 보더라도 비정규직에 대한 기준이 ‘이어령 비어령’이다. 정부의 공식 비정규직 근로자는 한시적, 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파견·용역·호출 등의 형태로 종사하는 근로자 등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여기에 무기(無期) 계약직이나 도급·하도급 업체에 고용된 직원, 정규직 근로자 중 상용직이 아닌 근로자까지 비정규직으로 포함해 그 수가 훨씬 많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이나 보험설계사 등 특수 고용 종사자들도 재계는 개인 사업자로,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분류한다. 지난 정부에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도 노동계 기준으로는 정규직전환과 거리가 멀다. 따라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비정규직은 644만 4,000명으로 전체의 32.8%이고, 노동계가 발표한 지난해 비정규직은 873만명, 전체의 44.5%나 된다.

노동계의 기준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중은 높고, 그에 따른 차별과 양극화 갈등은 심각하다.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고용절벽과 불안, 불평등이야말로 단순한 소득격차를 넘어 사회 양극화와 저출산 등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들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공공부분 일자리 창출로 청년실업 문제의 돌파구를 찾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고용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새 정부의 결단은 마땅하면서도 옳은 일이다. 다만 성급하게 윽박지르기 식이어는 곤란하다. 정부와 기업과 노동계, 국민이 함께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는 강압보다는 인내심으로 재계와 노동계를 설득시켜야 한다. 아무리 공공부문으로 물꼬를 터도 민간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실효성 있는 결과를 더구기 어렵기 때문이다. 꼼꼼한 태조사와 로드맵으로 단계적으로 실천 가능한 것부터 해결해 나가야 한다. 공기업들에게 이익을 남기는 것만이 선진화, 개혁의 전부인양 강요해 비정규직으로 임금만 줄이도록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

민간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질 좋은 일자리 문제에 깊이 고민하고, 수용하는 적극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해고가 편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관행처럼 비정규직을 고용해오지 않았는지, 대기업의 경우 오만한 갑질로 중소기업에까지 고용구조를 악화시키게 만든 것은 아닌지 정말 뼈아픈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정규직 노조들도 마찬가지다. 집단이기주의에 사로 잡혀 비정규직의 설움을 외면한 것을 반성하고 ‘귀족노조’ ‘세습노조’란 오명에서 벗어나 기꺼이 고통분담과 양보에 동참해야 한다.

이렇게 노사정이 기꺼운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할 때, 정말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비정규직 없는(제로) 대한민국’은 올 것이다.
이대현 주필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guriq@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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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기도 서럽거늘, 일까지 하실까’

 

 

▲ 이대현

 

 

'이고 진 저 늙은 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서럽거늘 짐조차 지실까’                        

조선 송강 정철의 시조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노인들의 삶은 이렇게 무겁고 서럽다. 늙어서도 짐을 벗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신세인가 보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75세 이상 고용률이 2015년 기준으로 17.9%로 5년째 OECD 25개국 가운데 1위다. 그야말로 노인인 75세 이상 열 명 중 두 명은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2위인 멕시코(17.0%)와 비슷 하지만, 일본(8.3%)의 2배이다. 덴마크는 아예 한명도 없다. 65세 이상 고용률도 30.6%로 2위에, OECD 평균(13.8%)의 두 배가 넘는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쉬어야 하는 나이에도 일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 노인들. 아무리 고령화 사회에 노동연령이 늘어나고, 일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것이 연금 수입도 없고, 가진 돈도 없어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면 서글프다.

 

 

< 출처 : SR타임스 >

 

 

OECD 회원국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약 50%로 압도적 1위인 나라. 그나마 일자리라고 해봐야 경비, 미화원, 택배원, 활동보조인, 가사도우미 등 단순 노무직이 85.4%이다. 아니면 풀 뽑기나 휴지 줍기 같은 공공근로로 주 15시간에 월 30만원 남짓 받는다 이런 현실에서 ‘100세 인생’을 마냥 축복이라고 좋아해야 할까.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으로 올린다고 “이젠 쉬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 짐을 대신 받아줄 젊은이들도 자기 일이 없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참, 어렵다. 한쪽에서 젊은이들이 일ㅈ바리가 없어 신음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인들이 ‘이고 진 짐을 벗지 못해 노구를 이끌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하니. 그러다가 다치거나 병이라도 덜컥 나면.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살아야 할 날들과 겪어야 할 고통과 비참함이 더 무섭다는 우리나라 노인들.

이들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2013년 ‘노인 일자리 확대’를 국정과제로 삼아 매년 4만6,000개의 일자리를 늘렸다고 하지만 보수는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내용 보다는 오로지 숫자 늘리기 생색내기에 치중한 결과다. 더구나 지난해부터 노인일자리 사업의 공익활동을 근로가 아닌 자원봉사로 명시해 맘 놓고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노인 열정페이'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그래도 그들은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사실상 자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데도 부양의무자제도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영화 제목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일까. 선거 때마다 표를 위해 노인을 위한 복지를 요란하게 외친다. 그런데도 여전히 빈곤과 열악하고 저임금의 노동에 매달려야 하는 노인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회복지를 늘리고, 일하고 싶은 노인들에게는 단순 노무직이 아닌 자신의 경험과 연륜을 살리면서도 육체적으로 무리하지 않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것. 공공사업근로든 민간 일자리든 그들의 보수를 최저임금이나 물가에 연동해 최저 생계를 보장하는 것.

말은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 혼자만 ‘복지’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과 가정, 사회공동체 모두가 함께 희생하고 나누지 않으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거창하게 효니, 어른 공경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 멀지 않아 바로 내가 살아야 할 곳이다.

이대현 주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guriq@naver.com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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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징후’도 함부로 무시하지 마라

 

 

 

▲ 이대현

 

 

 

모든 일에는 징후가 있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려면 수백 번의 작은 사고가 앞서고, 심한 병을 앓기 전에 신체에 작은 이상들이 나타나듯이.

때론 영화의 상상이, 아니면 과거 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그 징후를 일려주기도 한다. 그 상상과 재조명은 일종의 ‘예감’이다.

 

 

▲ 영화 '빅 쇼트'의 한 장면. ⓒ SR타임스

 

 

아담 맥케이 감독의 영화 <빅 쇼트>는 어떤 이유로든 우리가 그 징후를 무시하면 얼마나 끔찍한 일을 만는지 알려준다. 2008년 미국의 경제붕괴를 가져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의 결말은 끔찍하다. 미국 대형은행들의 몰락, 5조 달러 증발, 800만 명의 실업자, 600만 가구의 주택상실. 미국 월가의 대형은행들과 신용평가사들, 정부와 언론의 부도덕과 불감증이 가져온 결과이다.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로 시작하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2008년 서브파라임 모기지론의 부도로 미국의 주택시장이 붕괴할 때 ‘빅 쇼트’로 대박을 터뜨린다. 캐피털 대표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펀드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커렐), 도이치방크의 트레이더 제러드 배넷(라이언 고슬링), 전 트레이더 벤 리케르트(브래드 피트)와 그의 도움으로 떼돈을 버는 신참내기 자산관리사 찰리와 제이미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을 예상하고, 역발상으로 은행과 CDO (주택담보부증권)에 대한 CDS(신용부도스와프)를 맺는다. 모두 어리석은 투자라고 비웃었다. 리먼 브라더스는 횡재를 했다고 생각했다. 모두 주택시장은 안정적이고, 주택대출을 안 갚는 사람은 없다고 믿고 있었으며, 주택가격은 계속 상승했다. 신용평가사들은 CDO에 계속 최고등급(AAA)을 매기고, 튼튼한 월가의 채권부도지불능력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엄청난 자료 분석과 현장 확인을 통해 월가와 은행 신용평가사들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았으며, 주택구입을 부추기면서 국민을 속이고 있는 사회제도의 모순을 간파했다. 집주인이 개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집은 100채나 되는데 텅 비어 사는 사람은 겨우 네 명뿐이고, 무직장 무소득 대출이 판을 치고, 스트리퍼가 치료사로 신분을 속이고 담보대출로 집을 다섯 채나 샀다.


그들은 알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대출이, 그것의 연체율이 600만 가구에 육박하는데도 등급가게로 전락한 신용평가사들이 경쟁사에 고객(은행)을 뺏기지 않으려 AAA등급을 고집해 오히려 CDO 채권가격이 상승하는 기현상을 만들고, 이미 서브프라임 손실이 5%를 넘어섰는데도 증권화포럼에서 은행들은 모기지사업 번창을 떠들고, 친구인 기자는 월가와 유착한 언론에 물들어 “예감에 인생을 걸 수 없다”며 진실보도를 외면한다는 사실을.


마크 바움이 “이건 사기야”라고 외치지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다. 영화 <빅 쇼트>가 꼬집은 대로 사람들은 나쁜 일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리거나, 그것을 축소한다. 진실은 시와 같은데 대부분 사람들은 시를 혐오한다. 불법과 사기로 징후가 명백히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불감증과 외면으로 재앙을 불러들인다.


징후를 무시한 재앙의 댓가는 대부분 아무런 힘없는 국민, 즉 우리 신이 치러야 한다.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의 ‘한한령’이 본격화한 느낌이다. 한국으로의 여행금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대한 압박을 넘어, 노골적인 반한 감정이 중국인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그것이 자연발생적이든, 중국 정부의 은밀한 지시에 의해서든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당장 한류와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고, 화장품과 유통업으로 번지고 있다. 게다가 중국이 북한을 껴안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너 자칫 안보를 위해 선택한 사드로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최악의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을 상징하는 ‘한한령’도 징후가 있었다. 지난해 한류의 중국유입을 비공식적으로 막을 때였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했나. 근거 없는 것이라고 호도하거나 별 것 아니거나 일시적 현상이라며 무시하고, 외면했다. 그래놓고 둑이 터지자 지금에야 허둥대지만 쏟아지는 물에 속수무책이다.


어디 이런 징후를 무시한 일이 한 두 번이었나. 이 정부를 무너뜨리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에도 숱한 징후가 반복됐지만 권력에 아부하는 인간들에 의해 무시됐다. 아무리 작은 징후도 무시하지 마라. 그때부터 준비하고 대비하라.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는 정도가 아니라, 들판 전체가 절단나지 않게.


 

이대현 주필 guriq@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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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그래도 있습니까?

 

 

 

▲ 이대현

 

 

상실의 시대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들만 더 많아지고 있다. 선과 악이 강퍅하게 충돌하고, 가치관이 뒤섞이고, 가짜가 당당하다. 생각과 의견을 진실이라고 우기고, 귀는 막고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법도 내 편이 아니면, 내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면 가차 없이 무시한다.

 

 

< 출처 : SR타임스 >

 

남이야 굶주리고 헐벗든 말든 내 것만 열심히 챙기고 안전하고 풍족하게 살면 그만이다. 무한한 자유경쟁, 약육강식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존법칙이라며 타인의 희생에 냉랭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상식을 잃었고, 권위를 잃었고, 원칙을 잃었으며 소통과 관용, 나눔과 공동체 의식을 잃었다. 인격을 무시한 채 상대를 공격하는 천박한 무기가 된 언어는 품위를 잃었다. 사실과 의견의 혼동, 자기합리화의 시대에 '진실'은 소용없다.

그뿐인가. 어디를 둘러봐도 일할 곳이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갈 곳 없어 길거리를 떠돌거나, 오토바이로 짐을 배달하거나, 술 취한 사람 대신 운전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직장을 잃은 베이붐세대는 조그만 분식집을 열고는 텅 빈 가게에 앉아 한숨을 쉬고, 국민 4명 중 1명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헤어나지 못하는 빚 걱정으로 겨울추위가 더하다. 여차하면 가장 먼저 잘릴 비정규직들은 경제가 더욱 나빠질 것이란 소식에 불안하기만 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도 희망을 주지 못하고, 세계 경제도 우리 편이 아니다. 설령 경기가 나아지고 수출이 늘어난들 무슨 소용인가. 그것이 내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결국 1%만 배 불리는 ‘부의 양극화’를 부채질하면서 99%의 절망만 키울 것이 뻔하지 않은가.

정부가 내년에 예산을 늘려 7만1000개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했지만, 그 역시 와 닿지 않는다. 지난 3년 동안 그렇게 일만 열면 최우선으로 꼽았지만 결국 청년실업률은 그대로이지 않은가. 문화와 미디어산업까지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팽개치며 떠벌렸던 일자리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가.

정부는 믿음을 잃었다. 말로는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해놓고는 귀를 막았다. 공정함과 정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외면했다. 그렇게 "권력비리 없다"고 장담했지만 곳곳에서 부정사건이 터졌다. 믿지 못하면 어떤 진심도 소용 없다.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선언했지만 반응이 시큰둥하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악을 써대고, 상식조차 무시하면서 권위와 제도에 대들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공정'의 가치를 지나치게 부여하고, 코미디 풍자에 열광하는지 모른다.

지금이 아니다. 6년 전 대한민국의 겨울 풍경을 쓴 칼럼 ‘희망, 있습니까?’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을까. 누가 이 글을 6년 전의 것이라고 생각할까.

대통령부터 썩어버린 나라, 그래놓고는 반성은커녕 ‘누군가 엮은 것 같다’는 음모론이나 제기하면서 나라를 진창으로 몰아가는 나라. 그 주변에서 국정을 농단하고, 부정과 비리를 무참히 저질러 놓고 일말의 반성도 않는 ‘간신’과 ‘마름’들이 애국을 들먹이는 나라.

청년들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은 6년 전보다 더 비참하다. 여전히 일할 곳이 없어 거리를 떠돌거나 알바를 전전한다. ‘흙수저’ ‘헬조선’란 자조를 넘어 이제 그들은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어)’을 읊조리며 삶마저 포기하려 한다. 취직을 하더라도 혼자 살기도 벅차다며 결혼을 포기하고,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런 나라를 향해 “희망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누구는 “있다”고 말한다. 이제 정치가 바로서고,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모두 뼈저리게 절감했고, 국민의 분노와 공동체 정신의 무서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6년 전에도 그랬다. ‘늦긴 했지만 정부도 정치권도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조금은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환골탈태를 위해 한나라당은 비대위까지 출범시켰고,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섰다.빈말이 아닌, 기업의 이익에 앞서 정말로 청년실업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회장도 있다.’

그래서 ‘이만하면 견뎌볼 만하지 않은가. 물론 삶이 녹록하지 않겠지만 꿈과 희망까지 버리지는 말자. 꿈이 없으면 지금의 고통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한 번만 더 믿어보자’고. 그러나 그 믿음을 여지없이 깬 장본인이 누구인가. 새로운 희망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바로 그 대통령이고, 정치인들이고, 재벌이 아닌가.

그들에 의해 나라가 제자리걸음은 고사하고 뒷걸음질 친 지금, 예전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에게 “내가 희망”이라고 외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부정도 뿌리뽑고, 권력의 오만함도 몰아내고, 청년들이 일할 곳도 넘치게 만들겠다고 떠들고 있다.

그들을 믿는가. 솔직히 말해 이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최악을 면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그들에게 수백 번이고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희망, 그래도 있습니까?“라고.

 

<주필ㆍ국민대 겸임교수ㆍ前 한국일보 논설위원>
이대현 주필  guriq@naver.com

이 칼럼은 에스알(SR)타임스와 콘텐츠 제휴로 게재하는 것이며, 외부 칼럼은 본 협회의 공식 의견과 편집 방향과 다를수 있습니다.여러 블로그 독자들의 많은 구독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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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조사기자협회는 1987년 국내의 신문, 방송, 통신사의 조사, 정보, 자료, DB업무를 담당하는 조사기자들의 모임으로 출범하여, 2009년 회원들의 연구활동에 기초한 신문 및 방송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사단법인으로 재출범하였으며, 언론공익활동으로 신문논술대회, 조사연구 발간, 세미나·토론회, 보도연감 출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는 언론단체입니다

 ‘새들의 반란’ 경고메세지

 

 

 

▲ 이대현

 

2000만 마리. 올 겨울 찾아온 AI (조류 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된 가금류의 숫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1이 넘는 닭과 오리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농가와 식당들의 절망과 아픔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마어마한 양을 땅에 묻었으니 환경오염은 또 어찌할꼬. 지금이야 겨울이어서 괜찮겠지만 여름이 되고 장마가 지면 2000만 마리의 썩은 닭과 오리가 토양과 지하수로 스며들 것이다.


 

< 출처 : SR타임스 >

 

 

조류독감으로 불리는 AI는 야생조류가 닭이나 오리에게 전파하는 급성 바이러스 질병으로 한번 유행하면 걷잡을 수 없다. 아무리 방제를 하고, 사전에 차단작업을 펼친들 어느 총리의 하소연처럼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가만히 있어” 라고 명령할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속수무책, 빨리 봄이 와서 철새들이 돌아가고 기온이 올라 바이러스가 저절로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백신도 좋고, 울타리도 좋지만 역시 최선의 방책은 인간이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한 것처럼 닭과 오리들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선의 방법은 말 그대로 옴짝달싹 못하는‘닭장’이 아닌 ‘자연’ 속에서 자라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소와 돼지 등이 걸리는 구제역과 함께 AI를 두고 인간이 탐욕으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있는 것에 대한 동물들의 최후의 반란,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항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새>의 경고가 결코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AI의 창궐은 처음이 아니다. 3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위력으로 전국의 축산농가를 초토화시켰다. 그때에도 열악한 사육환경개선 정책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그러니 이번에 또다시 AI 폭풍을 맞을 수밖에.


자연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데도 이를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 아직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 옮겨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언젠가는 사람이 감염되는 유행성 독감으로 변이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지난해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단백질을 갖고 있어, 각종 독감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변종에 대해서는 전혀 저항력을 갖지 못한다.


이미 그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으로 밝혀진 조류독감 바이러스 중에 H5N1는 1997년 홍콩에서 6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고, 이후 베트남, 태국 등지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죽음으로 항거하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탐욕은 버리지 않은 채 알량한 과학과 의학으로 그것을 막아보겠다는 인간의 오만함이 부른 재앙 AI. 어떤 일이 더 벌어져야 인간은 자연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가질까.

 

<주필ㆍ국민대 겸임교수ㆍ前 한국일보 논설위원>
이대현 주필  guriq@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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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파파’ 와 ‘오 마이 프레지던트’

 

 

▲ 이대현

 

 

조용하지만 큰 울림의 영화 한편이 상영 중이다. 박혁지 감독, 조미혜 작가의 다큐멘터리 <오 마이 파파>. 한 신부의 이야기이다. 그 주인공은 소 알로이시오. 한국 이름이 소재건(蘇再建)인 그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그것도 이국땅에서 평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우리는 그의 이름은 잘 몰라도, 대한민국 중년들은 부산‘소년의 집’은 알고 있다. 한때 축구를 잘해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서만은 아니다. 전쟁과 가난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오 마이 파파>는 그 ‘희망’을 만든 소 신부의 낡은 사진과 자료를 뒤지고,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가 남긴 흔적들을 찾아가면서, 그의 시간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지 확인시켜 준다.

 

과장도 없다. 죽은 자에 대한 미화도, 상업적 계산의 극적인 장치도 없다. 카메라와 마이크는 마치 구경하듯 비추고, 소리를 담으면서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 소 신부의 소명과 사랑, 용기와 실천, 그리고 희망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의 봉사와 헌신의 삶이 더욱 소중하고 그리운 것은 지금 우리 앞에서 탐욕과 부정, 비겁과 절망의 시간들 때문이리라.

 

소 신부는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삶을 소명(召命)으로 받아들였다. 누구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했지만, 말뿐이었고 소 신부는 그것을 실천했다. 어떤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 하늘의 일에는 우연이란 없다. 누구에게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알고 준비해 놓는다는 것이다.

 

소 신부도 그랬다. 성모 발현지인 벨기에 바뇌에 있는 성모상을 자주 찾아가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제일 어렵고 가난한 나라에서 봉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1957년 27세에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한국 땅을 찾은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에게는 한국이 가장 가난한 나라, 전쟁으로 고아와 굶주린 아이들이 넘쳐나는 나라였기에 이역만리 낯선 땅을 선택했다. 소명을 지키려 했기에 이 땅에서 끝나지 않고 평생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 나섰고 죽는 날까지 아이들만을 생각했다.

 

그에게는 말이 아닌, 진실하고 깊은 사랑이 있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종교와 인종과 국적을 떠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라는 성모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1957년 12월 8일, 첫 부임한 부산에서 그의 사랑의 마음과 눈에 들어온 것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었다.

 

 

 

 

누구의 눈에도 그들은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피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도 냄새와 파리 떼로 눈을 뜰 수 없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그가 막사이사이상을 받으러 간 1983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전에도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다. 필리핀 지도자들도 그들을 보았다. 그러나 사랑을 가지지 않은 눈이었기에 보이지 않았고, 봐도 가슴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오 마이 파파>는 사랑을 가진 사람은 눈부터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눈으로 자신이 손 잡아주어야 할 사람, 함께 가야할 사람을 모두 담는다고 말한다. 소 신부는 가난한 한국의 고아들을 보았고,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깨달았다. 그래서 1964년‘마리아 수녀회’를 창설해 고아들에게 가장 간절한 엄마의 사랑부터 선물했다.

 

그는 형식적인,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랑하기 위한 사랑과 봉사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리아 수녀들에게“늘 아이들 곁에 같이 있어라. 기도 중이라도 아이가 부르면 달려가라. 아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께 먼저 봉사하라”고 했다. <오 마이 파파>를 통해 그가 우리에게 묻는다. “가난한 사람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이 나라 대통령, 국회의원이라고 모르겠는가. 단지 흉내만, 생색만 냈기에 지금도 가난하고 상처 받은 아이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 아닌가.

 

<오 마이 파파>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고, 감동적인 장면은 멋지게 지은 필리핀과 과테말라의 소년·소녀의 집도 아니다. 정지 흑백화면으로 담은 소 신부의 표정이다. 따스하면서도 강렬한 눈빛. 거기에서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그의 사명과 실천 의지를 읽는다. 게다가 우리를 숙연하게, 부끄럽게 하는 장면은 또 있다. 판자로 지은

 1963년의 그의 오두막 사제관과 그의 유품인 닳고 해져서 군데군데 꿰맨 평생 한 벌뿐인 수단, 낡은 구두, 그리고 색 바랜 안경이다.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지독히 가난하고 검소했던 소 신부. 정말 새 것이 싫어서 마다하고 낡은 것을 고집했을까. “차라리 애덕은 어렵지 않으나, 스스로 가난하게 사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한 수녀의 고백이 솔직하다. 그러니 1982년에 미국의 도티 부부가 감동해 5달러만 해도 통 큰 기부였던 당시 무려 25만 달러를 ‘소년의 집’ 아이들의 수영장 건설을 위해 내놓지 않았는가.

 

 

 

스스로에게 엄격했기에 소 신부는 누구보다 용기 있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사명을 실천할 수 있었다. “내 부모형제, 조카라면 그렇게 살도록 두겠는가”라는 말에서 부랑아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폭력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은, 비겁한 평화를 거부한 그의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말했다. “내 희망은 보통 한국 가정의 아버지 것과 똑같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교육 받아서 사회에 나가서 사는 것이다”

 

그에게는 지금도 아들, 딸이 세계 여섯 나라, 10개 도시에 2만여 명이 있다. 멕시코 과달라하라 소년의 집에서 봉사하는 수련 수녀인 안나 히메네스처럼 그의 뜻을 따르며 오늘도 어떻게 하면 이 가난한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 신부를 기억하고. 그에게 감사하면서 그곳에서 희망을 키우기 위해 찾아온 소년은 희망과 꿈을 갖게 됐고, 그런 아이의 아버지는 “주님이 도와주리라”고 믿는 다. 희망은 인간이 살아가는 존재이다. 더구나 아이들이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꿈과 희망조차 잃어버리게 만든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과 죄는 없다. <오 마이 파파>는 묻는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를 쳐다보고, 누구를 외면하고 있습니까?”라고.

 

그렇게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학교를 짓고 싶었던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1992년 3월 16일 루게릭병으로 우리와 작별했다. 그는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내 일을 다 한다’는 마음을 잃지 않았고, 자신의 소명과 사랑, 용기와 실천의 시간들이 “내 뜻대로만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오히려 반성한다.

 

그런 그에게 하느님은 “너가 시작은 하지만 끝낼 필요는 없다. 이것은 너의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말해준다. 어쩌면 그 메시지야말로 살아있는 우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비 때마다 우리보다 더 가난한 나라에서도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그의 음악을 이어가고 있다. 소 신부에게 복음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이웃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느끼고 좋아할 수 있게 표현하고 실천할 때 우리를 지켜주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 준다. 서로 하나가 된다.

 

그의 사랑의 실천으로 ‘희망’을 가꾸어가는 필리핀의 가난한 소녀들이 그의 장례미사에서 눈물을 훌쩍이며‘오 마이 파파’를 불렀다. 그 아버지는 바로 소 신부였다.‘오’는 슬픔과 안타까움과 존경의 외마디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오 마이 프레지던트’를 부르짖는다. 그러나 외마디 ‘오’는 탄식과 절망과 분노이다.

 

누구에게나 역사는 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도 지나온 길을 누군가는 기억한다. 그 시간과 기억의 여행이 우리를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만들면서 위로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그 시간과 존재조차 기억하기 싫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오 마이 파파’와 ‘오 마이 프레지던트’처럼.

 

<주필ㆍ국민대 겸임교수ㆍ前 한국일보 논설위원>
이대현 주필  guriq@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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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조종당한다는 것은?

 

 

▲ 이대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 삶을 조종하고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소설과 영화가 그 의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1984>는‘빅 브라더’에 감시당하고 통제되는 인간의 삶을 그리고 있다. <트루먼 쇼〉에서는 주인공 주변의 가족과 친구는 텔레비전 쇼를 위한 연기자이고, 직장과 살고 있는 마을은 거대하게 꾸민 스튜디오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꿈마저 침범 당한다. 이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되묻는다. 문학과 영화의 상상이지만 자신 있게 모두 허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 ⓒ SR타임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누군가 내 삶을 침범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그 불안은 어떤 존재가 내 삶을 모두 조종하고 있다는 의심으로 연결된다. 그것이 점점 현실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듯, 현실에서도 곳곳에 설치된 CCTV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가상세계에서도 음식의 맛을 볼 수 있고, 상대방의 모든 움직임을 직접 느낄 수 있는 4차원 영상시대다.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화면 속에 들어가 전투를 펼치는‘모션 컨트롤러 시대’는 이미 옛날 일이 됐다. 지금은 나의 감정까지 읽어내는‘이모션 컨트롤러 시대’이다. <인셉션>처럼 누군가 내 꿈속에 들어와 조작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질 수 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다른 사람에게 강탈당하는 〈본 아이덴티티〉나 〈언노운〉같은 영화들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이미 그런 세상이 온 건 아닌지.

사람은 50세가 넘으면 잠재의식으로 죽음을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죽는 꿈을 가끔 꾼다. 사형수가 되어 집행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상황을 맞는다. 죽을 죄를 지었다면야 마땅히 참회하며 최후를 맞이할 텐데, 그게 아니다.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도망가려 해도 소용없다. 공포에 떨며, 울부짖으며 사형을 당하는 순간, 깬다. 꿈이다.

꿈도 반복하면, 꿈속에서도 ‘이건 꿈’이란 자각을 갖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 옆에서 속삭인다. “지금 이게 꿈이라고 생각하지? 천만에”라고. 꿈속에서 꿈을 깨 본다. 정말 그의 말대로 꿈이 아닌 현실이다. 꿈이 아니니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구나 절망하며 발버둥치다 눈을 뜬다. 〈인셉션〉처럼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고, 꿈속의 상황을 누군가 조작하는 일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꿈까지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

<조정 팀>의 SF 소설가 필립 K. 딕은 아이작 아시모프처럼 외계인의 존재나 우주전쟁,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하지는 않는다. SF 명작으로 꼽히는 리틀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나 영화 〈토탈 리콜〉의 원작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등에서 그는 전쟁이나 오염으로 인간의 존재가 위협받고, 인간의 삶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이야기한다.

<조종팀〉도 마찬가지다. 조정국의 요원들이 주인공의 일과 사랑, 미래를 감시하며 그가 계획에서 벗어날 때마다 나타나 조종하고 통제한다. 자신들만의 비밀통로를 통해 공간이동을 하면서 인간의 행동을 마음대로 바꾸지만, 그들은 실수도 하고 인간적인 감정도 드러낸다.

조지 놀피 감독은 이 작품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보험회사 세일즈맨인 주인공 데이비드(맷 데이먼)를 앞날이 유망한 젊은 하원의원으로 설정하고, 무용수 엘리스(에밀리 블런트)를 등장시켜 일과 사랑사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시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자유의지의 산물임을 인식하고, 그 의지를 소중하게 생각할수록, 누군가 자신의 삶을 조종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만약 데이비드가 자유의지를 버리고 조정국의 계획을 따랐다면, 그는 영화의 주인공일 이유가 없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 인간의 진정한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 주려했다. “중요한 건 내가 누구냐는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딕은 소리친다.

작가 필립 K. 딕은 왜 누군가 인간의 미래까지 하나하나 계획하고 통제한다고 상상했을까. 일종의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불신이다. 사실 인간은 그동안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했다.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은 여전히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는 미숙한 존재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은 로봇이나 인형과 다름없다. 그래서 누군가 그것을 뺏으려 한다면 그가 외계인이든, 초능력을 가진 조정자든, 신이든, 사이비 교주든 데이비드처럼 용감히 맞서 지켜야만 한다. 삶은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만들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분노와 절망과 치욕에 빠뜨린 ‘최순실게이트’도 결국은 자유의지를 포기한 대통령과 사악한 ‘컨트롤러’와 그에 빌붙어 사리사욕만을 채우려한 하수인들의 짓이다. 이 어이없고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길은 하나다. 국민들에는 ‘자유 의지’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
<주필ㆍ국민대 겸임교수ㆍ前 한국일보 논설위원>
이대현 주필  guriq@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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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이런 CEO 없나요?”

 

 

▲ 이대현

 

 


얼마 전 한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다. 미국의 한 CEO의 이야기였다. 그는 지난해 자신의 회사 직원 120명 중에 연봉이 7만 달러 이하인 30명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들의 연봉을 일시에 7만 달러(약 8,000만원)로 올려주었다는 것이다.

 

▲ 미국의 카드결제 대행회사인 그래비티 페이먼트(Gravity Payments)의 설립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댄 프라이스는 자신의 연봉에서 93만 달러를 삭감했다. 사진은 프라이스가 직원들에게 자신의 연봉삭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 허핑턴포스트 화면 캡쳐 ⓒ SR타임스

 

 

미국의 신용카드 처리업체 그래비티 페이먼트의 댄 프라이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동시에 무려 110만 달러인 자신의 연봉도 15분의 1인 7만 달러로 깎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연봉 7만 달러에 맞는 생활을 위해 자신의 큰 집은 민박업체에 빌려주고 회사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얻어 지낸다는 것이다. 그의 결정에 감격한 직원들은 돈을 모아 전기자동차 테슬라 한 대를 선물하자, 프라이스는 감동의 눈물을 쏟고 말았다고 한다.

그가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한 이유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대 앵거스 디턴 교수의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결과를 실제 기업 현장에서 실험해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디턴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소득 역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연봉 7만5000달러가 될 때까지만 행복감이 늘어나고, 그보다 많아지면서부터는 소득이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댄 프라이스는 ‘연봉 7만달러 실험’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경제적 효과, 즉 돈 문제만을 갖고 접근한 것이 아니다. 진짜 주목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의 증대"라고 말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우선 회사 직원들의 이직률은 뚝 떨어졌고, 만족감은 올라갔다고 한다. 5년 전부터 계속 증가해 2013년 13.2%까지 치솟았던 이직률이 대폭 낮아졌다. 연봉이 올라 회사 근처인 시애틀에 집을 구하는 직원들이 생기면서 출퇴근 시간이 짧아졌고, 퇴근 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많아졌다.


 

▲ CEO 댄 프라이스

 

 

회사 이미지도 크게 높아져 입사지원서가 3만장이 넘게 들어왔고, 그중 50명을 신규 채용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1년에 1, 2명이 고작이던 직원들의 아이 출산이 1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으면 당연히 그것이 업무성과와 연결되어 회사 경영도 좋아지기 마련이다. 그래비티 페이먼트는 지난해 새 고객 4,155명이 생겼다. 전년에 비해 무려 55%나 증가한 것으로 연평균 증가율이 5% 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장추세이다. 반면 9%에 이르던 고객 이탈율은 5%대로 감소해 매출이 35%나 증가한 2,180만 달러(약 240억원)를 기록했다. 수익 역시 650만 달러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댄 프라이스는 최근 NBC뉴스‘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자선사업 하듯, 아니면 나를 희생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도 없다. 일종의 장기적 투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연히 일부에서는 소영웅주의라고 비난하거나,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냈다. 그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많은 어려움과 부정적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 기업의 대표이자 기업계의 리더로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인간과 사회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디턴 교수는“이미 많이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데 집중하는 것은 좋은 정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의 연구결과가 모든 나라, 회사, 직원들에게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나라 경제수준이나 사람에 따라 행복의 기준도 다르고, 돈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특히 돈이 모든 행복의 조건이 되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8,000만원이 아니라, 80억원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7만 달러 실험’이 모든 월급쟁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도 수십억 원 받고 있는 연봉을 과감히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또라이’ CEO가 있었으면. 그것이 결국 자신의 기업을 키우고, 나아가 사회에도 이익임을 댄 프라이스가 보여주었다. 하긴 변칙 배당으로라도 자기 주머니 먼저 채우고, 1000억원을 가진 자가 만족하지 못해 더 가지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나라에서 이런 기적을 바라는 인간이 바보일 테지만.

 

<주필ㆍ국민대 겸임교수ㆍ前 한국일보 논설위원>
이대현 주필  guriq@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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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CSR 스토리텔링] 그의 ‘비타민 고집’은 끝나지 않았다 


 

▲ 비타500 소아암 어린이 완치 기원 행사에서 故최수부 회장 ⓒ 광동제약

 

 

비타민은 ‘밥’이 아니다. 주린 자에게는 비타민보다 당장 밥이 먼저다. 소년도 그랬다. 열두 살에 다니던 초등학교 4학년을 그만두고 밥벌이에 나섰다. 차라리 고아라면. 소년에게는 병든 아버지와 형제 등 여덟 식구가 있었다.
소년의 그 시절은 언어로는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다. 낙동 강변 모래밭에 참외를 심어 팔았다. 담배 장사와 엿 장사도 했다. 이런 죽은 언어 몇 개로 어찌 그 산더미 같은 아픔과 고단함, 눈물과 분노와 좌절의 순간순간들을 말할 수 있으랴. 그 이후의 또 고단한 시간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말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천만에. 낙이 아니라 대부분 골병 들고 죽는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절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절망은 현재의 자신이고, 포기는 미래의 자신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 소년은 고집을 놓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는 고집. 그래서 그는 살았다. 훗날 사람들은 그의 뚝심과 고집이 타고난 성(최씨)과 성격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지만, 생존에서 터득한 것이기도 했다. 그게 없었다는 그는 진작 죽었다. 그의 가족들도.
 

 

▲ 광동제약과 선의라이온스클럽 의료봉사단이 필리핀 현지 주민을 무료진료하고 있다. ⓒ 광동제약

 

 

그 고집으로 그는 험난한 소년시절을 건넜고, 제약회사 외판원의 청년시절을 지나 자기 세상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고집을 믿었고, 그 고집으로 만든 약으로 세상에 우뚝 섰다. 그에게 기회란 ‘제 발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어떤 곳에도 반드시 있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누가 무엇을 하든 뭐라고 하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아도 된다.
그는 말했다. “나는 내 고집이 좋다”고. 성공한 사람의 자랑이 아니다. 그에게 고집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린 시절, 그가 고집 속에 담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자신처럼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을 잊지 말자. 물론 그들은 자기처럼 고집을 가지지 못했다. 인생의 기회, 성공의 기회는 물론 어려운 상황을 버티고 견뎌내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그렇다고 그것이 부족한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하는가.
그는 최인호 소설 ‘상도’의 주인공 임상옥을 떠올렸다. 장사꾼은 신용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팔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어쩌면 이런 원칙을 가진 내 몸에 그와 비슷한 피가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삶에는 일찍 고집이 도하나 생겼다. 하루에 한 끼를 먹기도 어려웠던 소년시절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었다. 주머니의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다 털어서라도 60년 전, 50년 전 길거리에서, 시장에서, 들판에서 만난 자기와 같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
 

 

▲ 광동제약 임직원 및 가족들이 소외이웃들에게 전달할 연탄을 나르고 있다. ⓒ 광동제약

 

 

먼저 아이들 생명부터 살리자.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심장병 어린이 돕기였고, 소아암 어린이 수술 돕기였다. 그 다음은 배고픈 아이들. 그것으로 ‘고집’이 풀릴 리가 없다. 그 옛날 자기처럼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내친김에 아예 문화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 추위에 떠는 아이들과 노인들을 위해 집도 지어주고, 연탄도 나눠주자.
여전히 그의 주머니에는 동전이 많았고, 그의 고집으로 성공시킨 비타민 음료로 더 많은 동전이 쌓였다. 그러나 그도 시간만은 맘대로 고집할 수는 없었기에, 3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이제 그는 사람들 사이에 ‘전설’이 됐다.
그러나 그 ‘고집’만은 전설로 남아있기를 거부하면서, 후손들에 의해 살아 숨쉬고, 더 단단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500여명이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들이 생명을 건졌고, 소아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그들과 함께 치유여행(힐링 로드)도 떠나고 있다.
그의 호를 딴 가산문화재단도 더욱 커지고 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510여 명에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지난 3월에도 고교생 65명이 9천7백여만원을 받았다. 4월에는 경기도 이천시에서 집수리 봉사활동도 있었다. 불우가정 및 독거노인에게 연탄과 라면 배달도 계속되고 있다. 비타민D가 결핍되기 쉬운 장애인, 어르신에게는 주사제도 투여해 주고, 대지진 참사로 질병에 걸린 네팔 국민들을 위해서는 의약품을 보냈다.
이렇게 그의 고집은 끝없이, 그리고 가장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으로 이어지고, 나아가고 있다. 마치 그의 인생처럼, 그가 고집스럽게 개발해 성공한 비타민 음료처럼. 광동제약 창업자인 가산 최수부 회장인 그가 광고에 나와 스스로 말한 ‘최씨 고집 50년’은 앞으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 것이다. 그의 ‘비타민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 비타500과 함께하는 생명나눔 힐링로드 ⓒ 광동제약

 

 

<이대현 주필. 국민대 겸임교수· 前 한국일보 논설위원>  guriq@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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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히 ‘낙하산’을 해임하겠나?

 

 

 

게재일 : 2016.06.17

 

 

 

 

▲ 이대현 
 

 

 

애초에 ‘낙제생들’

 

모든 정부가 그랬다. ‘개혁’을 소리 높여 외쳤고, 엄격한 신상필벌을 다짐했다. 그러나 한 번도 제대로 지킨 정부는 없다. 박근혜 정부라고 다르지 않다.

 

해마다 정부는 공공기관을 평가해 순위를 발표한다. 낙제점을 받은 기관장과 임원을 도중하차시키기 위해서다. 올해도 했다. 낙제한 기관장이 13명이나 나왔다. 그중 3명이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해임 건의 대상은 한 명도 없다. 이러니 누가 겁을 내겠는가.

 

올해뿐이 아니다. 최근 7년간 낙제점을 받은 27명의 기관장들은 하나 같이 잔여 임기를 거의 다 채우고 그만 두었다. 심지어 경고를 두 번이나 받고도 연임한 기관장도 있었다. 이처럼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니 임직원들이 1년에 천만 원 가까운 성과급을 챙겨가는 도덕적 해이도 그대로 지나친다.

 

이들은 애초 낙제생들이었다. 해임이나 경고를 겁낼 사람들이 아니다. 아리랑TV(국제방송교류재단)사장처럼 업무관련 비리가 명확히 드러나면 또 모를까, 무능은 상관없다. 그 때문에 부실해지고, 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기관 자체가 없어지거나 일부 기능을 다른 기관에 이관하거나, 통폐합 되어도 그만이다. 그때는 그 자리에 없으니까.

 

정부는 이번에도 2년 연속 최하인 E등급을 받은 광물자원공사, D에서 E로 내려앉은 석유공사에 대해 그렇게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물론 당장이 아니고, 단계적이다. 얼마가 걸릴지 모른다. 정권이 바뀌면 또 달라질 수 있다. 그 사이 무능한 기관장들은 무사히 임기를 마칠 것이다. 똑같이 E 등급을 받은 국제방송교류재단, 시설안전공단은 아예 그런 계획마저도 없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차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15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결과 및 후속 조치'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반장식 경영평가 단장, 송언석 차관, 정기준 기재부 공공정책국장. <사진제공=기획재정부>

 

어떤 바람에도 끄떡없는‘낙하산들’

 

낙제생들의 해임을 건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안다. 그들을 누가 임명했는가. 형식과 절차가 어떻든 저‘위’이다. 대통령이 직접 챙겼고, 그의 측근이나, 공신. 당의 실세들이 챙겼으며, 모피아들이 챙겼다.

 

순진하게 진짜 공개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사명감을 갖고 해보려는 인간은 바보다. 이제는 그것이‘상식’이 되어 그런 바보도 거의 없다. 눈치 없이 낙하산을 치워달라고 건의했다가 괜히 경을 치는 일을 당할 바보 공무원도 없어졌다.

 

‘낙하산’이라고 나쁜 것은 아니다. 정권 창출에 도움을 준 자기 사람을 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정부를 이끌어가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전제가 있다. 그 분야의 전문성이다. 역대 정부 모두 그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부분 과장이고, 견강부회이다. 인사 때마다 야당이나 일부 언론이 비판하는 것은 무시하자. 그 분야에 다른 전문가나, 현장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답은 명확하다. 십중팔구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나마 공개적으로, 전문가 흉내라도 낸 것은 낫다. 일일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슬쩍, 시쳇말로 그 분야의 ‘듣보잡’을 앉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로지 보은용으로 자리를 준 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런 기관장이 있는 곳의 직원들의 태도는 한결같다. 속으로는 비웃고 무시하면서, 적당히 해먹자. 어차피 그 역시도 그렇게 하려고 온 것이니까. 그런 인물의 뒤를 들여다보면 반드시 정권의 어느 한자락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정권 말기로 갈수록 심하다.

 

참, 많이도 들었다. 방만하고 도덕적 해이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힌 공공기관을 개혁하고, 전문성 강화하고, 철저한 관리감독과 평가를 하겠다는 말을.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은 우대하고, 눈치나 보고 노는 공무원은 반드시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도. 총선이 지난 지금, 그 낙제생들이 낙하산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이미 몇몇 낙하산들은 내려왔다. 우선 그런 무능하고 썩은 낙하산만이라도 치우고 없애버린다면, 국민의 눈은 금방 달라질 것이다.


<이대현 국민대 겸임교수· 前 한국일보 논설위원/ guriq@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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