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사기자협회는 제4회 대한민국 신문논술대회 수상작중 부문별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을 부문별로 순차적으로 게재해, 신문 읽기·쓰기 문화 확산과 비판 지성을 바탕으로 창의적 글쓰기를 확산하기로 했다. <편집자 주>
(편집=한국조사기자협회 취재팀 press@josa.or.kr)

<우수상> ‘김영란법이 묻는 정의사회의 요건’

 

▲ 손현진 씨 

 

정의로운 사회를 ‘도둑이 없는 사회’로 간주하는 국가 A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국가는 도둑질을 척결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국민이 남의 물건을 훔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타인의 집 근처를 서성이는 행위를 금하는 것이었다. 다만 예외를 허용해 달라는 의견에 따라 신발 끈을 묶는 데 최대 3분, 전화통화에는 5분, 골목길 청소에는 10분을 허용했다. 이 법안을 시행한 나라 A는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만약 A국가의 국민이 애초에 도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집합이라면 진정한 의미에서 정의사회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와 반대로 비도덕적인 개인이 모여 있는 사회라면 아마 편법이 판칠 뿐 정의사회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두고 생각해봄직한 가상의 이야기다. 법안의 실효성과 규제내용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결국 정의사회 실현에 대한 열쇠는 국민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규제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우려가 따랐다. 우선 법안을 적용하는 대상에 선출직 공무원 외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 등 민간인이 포함된 것이 문제시됐다. 이 내용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는 국가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큰 직업군이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들었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직업군으로 치면 변호사나 의사,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있다. 이런 지적과 더불어 3만원 이상의 식사와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제공받는 것을 금지한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이 많았다. 법안이 굳이 3·5·10만원으로 금액을 정한 근거조차 국민에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는데 그에 더해 원안에 있었던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부분이 최종안에서는 쏙 빠지면서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특히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공직자 윤리를 바로세우는 데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법안의 창시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장이 언급한 바 있어서 더욱 논란이 되기도 했다.

 

비현실적이고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에도 김영란법은 그 자체로 높은 국민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김영란법 논의를 촉발한 계기의 하나인 벤츠 여검사 사건부터 최근 유력 일간지의 주필이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액수의 향응을 받은 사실까지 그간 국민에 충격을 준 부패 사건이 많았다. 이 과정에 정의사회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졌고, 지난해 김영란법에 대해 찬성과 반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6명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개인마다 어떤 사회적 경험을 해왔으며 김영란법 시행으로 얼마나 활동에 제약을 받을지에 따라 해당 법안을 강력하게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법안의 내용에 매몰돼 진정한 정의사회의 길은 뒷전이 되는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자발적으로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따르는 것만이 도덕적이다”라고 하면서 개인 스스로 내재된 도덕법칙을 따를 것을 촉구했다. 김영란법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이 유달리 부각되어 보이는 것도 부패한 사회의 일원이었던 반성보다 관행의 변화를 더 두려워 한 이가 많은 탓이다. 법안 적용 대상에 포함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과 단체가 자기 내부의 도덕준칙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라인홀트 니부어는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선한 개인이 모인 사회도 악(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영란법이 개인의 부패를 엄단하는 것을 넘어 청렴사회에 대한 나라 전체의 열망을 현실화하는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앞으로 김영란법이 사문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입법 취지에 맞게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관련법을 손질할 경우 부패의 유혹이 강한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 각종 청탁을 뿌리칠 수 있는 근거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영란법이 각종 향응을 받지 못하게 ‘제약’하는 법이 될 수도 있지만 향응을 거절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입장에 설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은 정의사회를 살아갈 자격을 얻기에 앞서 중요한 질문을 받아든 셈이다. <손현진, 경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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