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에서 합의가 나온다

 

유민영 고려대학교 법학과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할까. 효율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독선으로 흐르기 쉽고, 민주적 절차에 중점을 두다보면 시간적·경제적 낭비를 가져올 우려가 크다. 그러나 둘 모두 우리 사회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다. 두 가지 사이의 접점을 찾아나가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여유’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도‘여유’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공사 강행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한시라도 늦어서는 안 된다며 다른 의견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반대측도 조급하기는 마찬가지다. 탄탄한 군사력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주장, 구럼비 바위가 흔한 지형이라는 주장엔 귀를 막는다. 다른 주장을 인정한 후에 논의를 하면 자신들의 주장이 힘을 잃어 공사가 강행될까 염려해서다.

 

‘전문 시위관이 가세했다’‘정부가 오기로 밀고나간다’는 등의 원색적 비난이 등자하면서 양측의 ‘여유’는 자취를 감췄다. 국가정책이 어떤 과정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찾아보기 어렵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꼭 필요한지, 과정상 절차는 준수했는지, 예상되는 부작용은 어떻게 감수할 것인지 따져보는 것이 국가정책을 결정할 때 필요한 기본이다. 상대를 정치적으로 비난하는 대신, 여유를 갖고 기본을 살펴보자.

 

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미·중·일의 세력이 교차하는 요충지 제주를 우리 힘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미군 기지로 사용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지만, 그 또한 우리의 전략적 결정일 뿐이다. 미국과 함께 해군기지를 이용할수도 있고, 때에 따라선 중국이나 일본과 이용할 수도 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주변 강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추 하나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절차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갈등이 생겨나는 지점이다. 반대 세력은 정부의 절차상 하자를 지적한다. 정부는 정해진 절차에 잘 따랐다며 항변하지만, 그것으론 충분치 않다. 법에서 정한 절차는 최소한일 뿐이다. 좀 더 여유를 갖고 반대세력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물론 그러다 보면 비용이 더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무작정 공사를 시작해 놓고 반대세력에 막혀 중간에 멈추는 것보다, 애초에 충분한 논의를 끝내고 공사에 착수하는 것이 낭비를 줄이는 길이다. 처음부터 효율성을 밀어부치기보다, 잠시 여유를 갖고 여러 의견을 먼저 듣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인 것이다.

 

가장 갈등이 심한 부분이 ‘예상되는 부작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다.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주변 해안이 자연상태 그대로 보존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희생이 불가피한데, 이것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상관없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세계적 희귀지형이기에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문제는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다. 각자의 의견에 따라 근거로 내세우는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점이 진짜 문제다. 해군기지 건설 찬성측은 문화재청이 구럼비 바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 않았고, 이는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라고 주장한다. 반대측은 강정마을 일대가 정부와 제주도가 지정한 해양보호구역·문화재보호구역이라고 한다. 사실은 둘 다 맞는 말이다. 문화재청은 작년 10월 구럼비바위에 대해 심사했으나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 않았고, 정부와 제주도는 강정마을 일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둘 다 사실이지만, 찬성측과 반대측은 각자에게 유리한 사실만 말한다. 언뜻 누군가 한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찬성측과 반대측 모두 조금만 여유를 갖자. 상대의 의견을 듣는다고 내 주장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실에 대해서는 더 넓게 봐야한다. 내 주장에 도움을 주지 않는 사실에 눈을 감아버리면 주장은 반쪽짜리가 된다. 여유를 갖고 상대를 인정할 때 내 주장도 인정받을 수 있고, 모두를 위해 효율적인 답도 찾아낼 수 있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효율적이면서 민주적으로 풀어내는 길. 이 길은 우리 마음속에 여유가 생길 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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