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칼럼은 문화일보  [오피니언] '오후여담'을 옮긴 것을 밝힙니다.

 

 출처: 문화일보

 


박현수 조사팀장

 

 

해녀는 제주도의 상징이고, 해녀의 원조는 제주도다. 세계에서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은 한국 해녀와 일본 해녀인 아마(海女)뿐이다. 제주 해녀는 19세기 말엔 부산 등 한반도 남쪽은 물론 일본, 중국 다롄(大連)과 칭다오(靑島),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조선 인조(1623∼1649) 때 제주 목사가 남녀가 함께 바닷속에서 조업하는 것을 금지하기까지 해녀들은 해남(海男)들과 함께 물질했다. 이후 점차 해남들이 사라져, 현재 7명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전의 해녀복도 1970년대 초 일본에서 일명 ‘고무 옷’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검은색 잠수복으로 대체되면서 작업환경도 나아졌다.

제주 해녀와 일본 아마의 차이점은 제주 해녀가 스티로폼 등으로 만든 부력 도구에 무거운 돌을 매달아 고정한 뒤 조업하는 데 반해 아마는 부부가 2인 1조로 물질하는 게 특징. 일본으로 출가한 제주 해녀들에 따르면 월평균 5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데다 전문직으로 대접받고 있다고 한다. 반면 제주 해녀는 연평균 수익이 500여만 원에 불과하다. 반농반어로 한 달에 10∼15일 조업에 나서는 데다 감귤 수확철엔 과수원 일에 매달린다.

‘제주해녀문화’가 지난 1일 일본의 ‘아마’를 제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이를 기념해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에 대해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특별전을 오늘부터 내년 3월 말까지 연다. 오는 10∼11일엔 제주해녀문화를 모티프로 한 영화 전도연 주연의 ‘인어공주’와 윤여정 주연의 ‘계춘할망’ 무료 상영회도 연다.

하지만 1965년 2만3081명에 달하며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해녀 수는 지난해엔 4337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85.7%에 이른다. 이런 추세라면 10년 이내에 지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시대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긴 하지만, 머지않아 명맥이 끊어질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아마를 해녀의 원조라고 세계에 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자칫 ‘김치와 기무치’처럼 될 수도 있다. 기왕 인류의 유산으로 지정됐으니, 제주 해녀가 인류의 문화를 더 풍부하게 하는 모습으로 오래오래 남아 있도록 연구 사업과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문화일보 2016-12-06 게재.
 
(편집=한국조사기자협회 취재팀 press@jo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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