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사 탐방 – 동아일보 書庫

“국내 최대의 신문사 보물 창고”

 

유영식 조사연구편집장(YTN)

 

 

요즘 언론사는 자료보관 공간 축소가 하나의 흐름이 된 듯, 제대로 된 인쇄자료 보관이나 자사의 중요 자료보관을 위한 자료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쌓이는 자료를 폐기하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많은 공간을 할애해 적절한 수준으로 보관하는 것 또한 단순 산술적인 계산의 득실을 따져 그러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기도 안산시 동아일보 사옥에 위치한 서고는 이러한 안타까운 국내 언론사 현실에서도 인쇄보존자료 관리의 모범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고에는 귀중한 보존 자료가 많아 외부인들은 물론 동아일보에서도 조차 허락 없이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가을이 물씬 접어드는 10월 초 안산 서고를 담당하고 있는 백학림 회원의 안내로 미지(?)의 ‘보물창고’를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안산 서고는 동아일보 창간호를 비롯해 어린이동아, 신동아, 여성동아, 과학동아, 주간동아, 스포츠동아, 멋 등 주·월간 잡지류, 본사 출판 단행본, 과거 동아방송 방송자료 등 동아일보의 사초가 되는 귀중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동아일보 안산 사옥 2~3층에 자리 잡은 서고의 전체 규모는 약 220여 평. 서고는 전체를 집적서고 형태인 새로운 모빌랙으로 꾸몄다. 모빌랙 서고는 적은 공간으로도 많은 자료를 보관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모빌랙 방식으로 자료의 수용능력이 2배 이상 늘어나 반영구 보존서고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었고, 체계적인 자료관리가 가능하다. 서고에는 방화 설비와 적정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항온항습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동아일보 안산서고 모빌랙 서가>

 

2004년 안산 사옥 3층에 새 보존 서고를 마련할 당시에 1곳이었던 서고는 현재 보존 자료 및 타 부서 이관 자료량의 증가로 4곳으로 늘어났는데, 제1 서고에는 본사의 영구 보존용 자료가 소장돼 있으며, 제2~제4 서고에는 본사에서 이관된 자료 및 기타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아래 표 참조.)

 

 

2개 층의 서고를 둘러보면서 2004년 안산 사옥 이전에 대한 에피소드에 대해 넌지시 물었더니 백학림 회원은 “여의도에서 안산까지 실어 나른 자료의 분량은 5톤 트럭 15대 분량이었는데, 귀중한 자료가 많았던 만큼 팀원들 모두 안산서고로 몇 달씩 출․퇴근하며 자료 분실과 손상이 없도록 많은 노력하였다.”라고 지난 기억을 들려주었다. 대부분의 조사기자가 한번은 겪어보았을 자료이전에 대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한 실수를 시작부터 하고 말았다.

 

서고를 둘러보면서 역사가 깊은 신문사답게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시대순대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며 박물관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펼쳐든 수 십 년이 넘어 누렇게 변해 웅켜지면 바스러질 듯한 낡은 신문지 속에는 현대사가 여기저기 인쇄된 활자로 촘촘히 박혀 있었다. ‘언론은 역사를 기록한다’라는 명징한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중요자료는 보존 보관이 중요하기에 2008년에 국가기록원에서는 창간호 지면과 일장기 말소 사건 지면에 대해 국가영구기록물로 보존하기로 했으며, 안산서고에는 그 지면을 보존처리해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백학림 회원의 숨은 공로를 회사에서 인정받아 그해 공로상까지 수상하였다고 한다.

 


<동아일보 창간호>

 

서고를 둘러보며 필자에게 눈여겨 들어온 자료가 몇 가지 있었는데 소개하고자 한다.
그 하나는 ‘인명록 카드’였다. 요즘은 데이터베이스로 인물정보를 보관하고, 인터넷을 통해 쉽게 인물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자필로 작성한 인명 카드를 조사부에서 목록함에 보관하여 그것을 찾아 사용했었다. 그 인명 카드가 중요한 사실(fact) 자료로 사용된 일례가 있다. 2002년 노무현정부 시절 장상 국무총리 서리의 학력 기재 논란이 한창일 당시 동아일보 인명 카드에 기록된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라는 자필로 작성한 내용이 인사청문회 위증을 증명하는 결정적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왜 조사부와 자료가 필요한가에 대한 훌륭한 답이 아니였을까.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의 자필 인명카드. 박사학위에 보면 ‘美 Princeton大 Ph.D’고 적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동아일보가 자랑하는 동아방송(DBS) 방송프로그램 릴테이프 자료들. ‘유쾌한 응접실’ ‘DBS 리포트’ ‘풍물삼천리’ ‘정계야화’ ‘DBS 초대석’ 등 1960∼70년대 사회상을 보여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고스란히 빛을 보기위해 준비중이었다. 전체 12개 모빌랙을 가득 채운 13,300여 개에 달하는 자료는 1963년 4월부터 1980년 11월까지 18년 동안 방송된 것들이다. 이것에 대한 디지털화를 위해 목록조사 작업을 최근 마무리 하였고, 앞으로 동아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디지털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 중 ‘유쾌한 응접실’은 국내 TV 토크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단골손님, 얘기손님, 노래손님이 출연해 주어진 화제를 놓고 유머와 풍자를 섞는 당시 대담(토크)프로의 새로운 포맷이었고, ‘정계야화’를 비롯 ‘한국전쟁’ ‘특별수사본부’ 등은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프로그램으로 정치 드라마의 원조 격이라고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고바우영감’ 삽화 원본이었다. 신문에 실린 연재만화는 신문지에 인쇄된 것만 보았지, 실제 삽화원본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김성환 화백의 손길 하나하나가 묻어있는 삽화 원본 도화지를 보며 ‘아~’라는 감탄사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대한 별도의 디지털화 작업이 무의미하겠지만, 삽화 원본에 대한 진귀함과 이렇게 소중한 것들이 먼지에 쌓인 파일함에 갇혀있다니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바우 삽화 원본을 필자와 함께 둘러보는 백학림 회원>

 

방송사에 근무한 필자는 마이크로필름 작업이 아주 생소하고 처음 보는 일이었다. 동아일보는 발행 신문에 대한 마이크로필름 작업을 외주작업이 아닌 직접 수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최종판 기준으로 한 달 주기로 한 번 씩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백학림 회원은 직접 마이크로필름 촬영 과정을 보여주며 “아주 단순한 작업이지만, 신경을 많이 쓰이는 작업이다. 한 장이라도 잘못 촬영하면 다시 재촬영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타 신문사의 경우 외주업체가 엉망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조사부에서는 그것에 대한 검수작업 또한 현실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날로그적 장인의 모습을 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디지털화된 PDF나 데이터베이스 데이터로 충분하다고 하는 현실에서 이 수작업 하나하나가 미래에는 한때 대세였던 디지털을 뛰어넘는 아날로그가 되지는 않을까? 이러한 아날로그 마이크로필름 작업이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 이러한 작업이 지속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협회에서 중점적으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처럼 수많은 공간 여기저기에 전시물이 위용을 자랑하는 박물관 투어는 아니지만, 동아일보 안산서고를 방문한 것은 일종의 숨겨진 보물창고를 다녀온 것과 같았다. 창고에 쌓인 보물은 눈으로만 봤을 뿐이였다. 보물이 묻혀있다는 헛된 부러움만 생겼을 뿐이였다. 언젠간 창고속 보물이 세상의 보물로 바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 가져 온 것은 그 보물창고를 지키는 선배 조사기자에게 받은 후배로서의 부끄러움이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블로그 이미지

한국조사기자협회

사단법인 한국조사기자협회는 1987년 국내의 신문, 방송, 통신사의 조사, 정보, 자료, DB업무를 담당하는 조사기자들의 모임으로 출범하여, 2009년 회원들의 연구활동에 기초한 신문 및 방송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사단법인으로 재출범하였으며, 언론공익활동으로 신문논술대회, 조사연구 발간, 세미나·토론회, 보도연감 출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는 언론단체입니다